좋은글·시 175

구용(九容)의 덕(德)이 필요한 시대

자고로 인물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있다. 신언서판에서 신(身)은 외모를 뜻한다. 신체에서 풍기는 진정한 의미의 풍모와 자세를 말한다. 언(言)은 언변을 뜻한다. 말을 함에 있어서 이치에 맞고 자신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솜씨를 의미한다. 서(書)는 글씨다. 글씨는 곧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판(判)은 판단력이다.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신언서판은 사람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를 평가하는 판단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신언서판은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임명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이 척도는 오늘날에도 인재 등용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유학 교육의 첫걸음은 소학(小學) 공부에 있었다.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의 대학..

좋은글·시 2022.08.23

더닝 크루거 효과

1999년 코넬 대학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은 당시 대학원생이던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와 함께 코넬 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독해력, 자동차 운전, 체스, 테니스 등 여러 분야의 능력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했다. 능력이 없는 학생은 다음과 같은 경향성을 보인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발표했다. “능력이 부족한 학생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므로 생긴 곤경을 알아보지 못한다. 훈련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지고 난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보고 인정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인지 편향의 하나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

좋은글·시 2022.07.05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오월은 걷기가 제격인 시절이다. 매일 숲속 외딴길을 걸으며, 걸으며 내 생각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된다. 두 발은 땅을 걷지만 내 마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을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두 발로 사유하며 자유를 만끽했던 많은 사람을 만난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걷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말해주는 프랑스 철학자 프레드리크 그로 (Frédéric Gros)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저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재형 옮김, 책세상, 2014.4)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걷다 보면 어떤 사람이 되어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싶다는 유혹을, 하나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된다.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

좋은글·시 2022.05.17

경청(傾聽)의 리더십(성숙불씨 770)

자기개발서 『경청-마음을 얻는지혜』(박현찬/조신영 공저, 위즈덤하우스, 2007)의 주인공 이청의 별명은 ‘이토벤’이다. 불통의 아이콘 이청 과장에 대한 동료와 후배들이 부쳐준 이름이다. 청력을 상실한 천재 베토벤이란 인물에서 얻은 비유일 것이다. 이토벤은 명문대 출신이지만, 독선적이고 자기의 말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조직의 성숙한 팀워크를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이과장은 회사의 구조조정에서 밀려나고 설상가상으로 불치병에 걸려서 청력을 상실한다. 아내와 이혼하고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운다. 독선적인 행동으로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소외된 처지의 그였지만, 생의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다는 결심으로 악기공장에 들어가 바이올린 제작기술을 배운다. 이 악기 제작공장엔..

좋은글·시 2022.01.18

아프간의 대재앙(성숙의 불씨 751호)

미국과 탈레반 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9월 11일을 목표로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부패할 뿐만 아니라 사기마저 저하된 아프간 정부군은 곳곳에서 추풍낙엽처럼 무너지면서 탈레반 반군이 수도 카불로 진격해 오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정권을 탈레반에게 넘겨주고 황급히 국외로 탈출 도주했다. “더 이상의 피해와 희생을 방지하고 아프간의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라는 것이 가니 대통령의 명분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맹신하는 탈레반이 샤리아법에 의거 가혹한 주민 통제와 처벌을 무자비하게 진행 중인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 서방 진영의 조력자를 색출하여 총살하는 장면과 부르카를 입지 아니한 여성을 길거리에서 참수하는 끔찍한 장면도 볼 수 있다. 아프간의 대재앙은 ..

좋은글·시 2021.09.03

시너지 효과와 링겔만 효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아마도 자연현상과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확실히 인간의 행위나 정서를 산술적 계산법이나 인과적 상호 작용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교환”도 가능하며, “아홉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한 하나를 아쉬워하는 마음”이 가능한 것이 인간의 심사이다. 두 사람이 하는 일의 결과가 사람에 따라서는 ‘1+1=2+α’, 혹은 ‘1+1>2’가 되기도 하고, ‘1+1=2-α’, 즉 ‘1+1

좋은글·시 2021.07.13

판단중지(判斷中止)

“인간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3마리의 ‘개(犬)’가 있다.”라는 진담 같은 농담이 있다. 선입견, 편견, 그리고 참견이다. 불완전한 판단에 기초하여 타인에 대한 충고, 평가, 비난, 정죄(定罪), 참견 등 오해와 불신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주로 감각기관을 통하여 내린 인간의 판단은 불완전한 인식일 수밖에 없다. 어떠한 생각에도 반론(反論)을 제기할 수 있으므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회의론자들은 판단을 중지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다만 이것저것 알 수 있는데 불과하다. 판단중지는 멈춘다는 의미인데, 그들이 보통 멈춘다고 했을 때는 논리의 전개를 멈추라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모든 의견·결정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판단중지(epoché)의 요점이다.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E. Hu..

좋은글·시 2021.05.25

봄꽃이 아름다운 까닭(성숙불씨 730호)

봄꽃이 아름다운 까닭 이택호(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내가[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이 고향을 그리며 부르던 이다. 이 중에서도 살구꽃은 복숭아꽃, 진달래꽃과 더불어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진달래꽃이 피고 난 후 벚꽃에 연이어 살구꽃이 핀다. 4월쯤에 피어나는 담홍색의 살구꽃이 나무 가득 피어난다. 본격적으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꽃이기도 하다. 옛 시골의 고향 마을 풍경을 떠올리면 으레 살구꽃이 핀 모습이 보인다. 소박하게 둘러쳐진 흙담 뒤덮듯 피어난 연분홍 살구꽃이 장관을 이룬 모습이 떠오른다. 조선 숙종 때 거제도에 귀양을 가서..

좋은글·시 2021.04.07

인간의 이중성을 그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인간의 이중성을 그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스티븐슨(Robert L. Stevenson, 1850~1894)의 단편 소설로 빅토리아시대의 사회상과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자 이중인격을 표현한 매체들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어린이용 동화나 영화로 여러 번 각색되었고 같은 제목의 뮤지컬이 매년 공연되고 있어서 소설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인공 지킬(Henry Jekyll) 박사는 인간의 몸에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두 가지의 본능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여러 실험 끝에 신묘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마시고 자신의 인격을 분리하는 일에 성공한다. 하나는 바로 원래의 의사 지킬 박사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절대 악의 분신인 하이디(..

좋은글·시 2021.02.17

신축년(辛丑年) 새해에 심는 성숙의 불씨

신축년(辛丑年) 새해에 심는 성숙의 불씨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해의 각오’, ‘신년의 결심’, 혹은 ‘새해의 덕담’이란 형식으로 새 출발의 의미를 찾는다. 연초에 생각의 씨앗을 잘 심어야 그해 삶의 농사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띠 해의 상징으로 알려진 다양한 생각들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 이를 성숙의 불씨로 심고자 한다. 소는 농경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으며, 사람을 위해 일해왔으며, 사람을 위해 그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랑과 헌신의 상징이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1950) 선생은 소띠해인 1925년 을축년(乙丑年) 새해 초에 《조선문단》에 이라는 수필을..

좋은글·시 2021.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