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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와(井蛙)와 하충(夏蟲)의 관점과 한반도 비핵화-<성숙의 불씨> 591호

일산테스 2018. 8. 2. 11:31

정와(井蛙)와 하충(夏蟲)의 관점과 한반도 비핵화

이택호(육사 명예교수)

장자(莊子)<추수(秋水)> 편에 보면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말할 수 없고, 여름 한 철의 곤충에게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원문으로 읽으면 井蛙不可以語於海者, 夏蟲不可以語於氷者이다.

우리의 인식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기의 경험의 장소에만 구속된 것이며, 여름벌레처럼 한정된 시기에 관한 자기 확신일 수 있다. 식견(識見)이 좁은 사람에게 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인식의 한계와 경험의 상대성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의 인식에 갇히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인지 부조화의 현상이며 상자 안에서의 사고라 할 수 있다.

인지 부조화와 상자 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 교과서라는 우물과 학창시절이라는 여름 한때를 넘어서는 자기 주도적 평생학습을 해야 한다. 인문학 관련 고전의 학습을 통하여 역사적인 안목을 키우고 국제관계의 지정학적인 역학관계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대관소찰(大觀小察) 하는 지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지난 612일 싱가포르에서 미북 비핵화 협상이 있었고 현재 42일이 지나고 있다. 트럼프-김정은 간의 회담 합의문이 나오자마자, 우리 사회의 논객들 간에 벌어지는 정와 하충식백가쟁명으로 아직도 시끄럽다. ‘김정은의 승리, 트럼프의 판정패라는 입장과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에 김정은이 걸려들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들의 우물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의견의 반대자들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CVID 비핵화는 본질상 조기에 쉽게 끝나는 일이 아니다. 개발한 기존의 핵탄두, 투발 수단, 핵 개발 시설, 과학자와 핵시설 관리책임자 및 종사자 등을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복잡한 문제이다. 김정은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압박으로 시작한 미국의 대북 비핵화 작업이 지금은 북미 간에 숨 고르기를 하는 상황이다.

과연 트럼프가 허풍을 띤 정치적인 쇼를 하고 있는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속성을 아는 만큼 트럼프의 지도력과 세계 전략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트럼프는 김정은 정권의 제거가 목적이 아니고 중국의 시진핑 품에서 김정은 정권을 떼어 내어 미국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는 돈을 벌기 위해서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거래하는 승부사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손자병법의 반간계(反間計)’차도지계(借刀之計)’의 달인이다. 미국 언론과 의회 반대자들의 비판 목소리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에게는 부드럽게 기다려 주며, 중국 시진핑에게는 강력한 관세 및 금융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 간의 운명적인 대결을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도록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정와(井蛙)와 하충(夏蟲)의 단견과 조급함에서 벗어나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아쉽다.

철학문화 연구소<성숙의 불씨> 591호 원고(2018.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