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시

한국의 토론문화 유감(성숙불씨 453호)

일산테스 2015. 11. 4. 19:24
성숙의 불씨
 
 453호

2015. 11. 03

‘성숙의 불씨’는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에서
주 1회(화)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토론문화 유감

 

지난 주말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한중일 3국의 학자들이 모여 각국의 근대화과정에 관한 소개와 토론으로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한중일 정상이 서울에서 만나는 뜻 깊은 시기에 발마추어 개최한 의미 있고 내실 있는 국제학술대회였다.

토론과정에서 역시 우려했던 문제가 노출되었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균형감을 갖고 객관적으로 잘 설명한 발표자에게 한 토론 참가자가 전혀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토론이 곤란하다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 여기서 오가는 설왕설래가 계속되자, 참석자 한 사람이 시간관계상 추후에 개별적인 토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토론을 중지하도록 한 사람에게 감정이 석인 목소리로 항의가 계속되었다. 일본의 학자와 중국의 학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기가 민망했다. 사실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불일치 문제로 감정이 상한 것 같았다. 여기서 한국 토론문화의 현주소를 볼 수 있었다.

토론의 정신은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지향하는 것이며, 여럿을 간파하고 하나를 지향하는 것이며 부분을 존중하고 전체를 지향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토론은 승패를 결정하는 싸움이 아니다. 나와 다른 의견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모르는 관점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이므로 이를 고맙게 여기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개방적 태도가 요망된다.

토론에는 양자 간의 논쟁(bilateral debate), 토의, 그리고 문답이 있을 수 있다. 논쟁은 대외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적 토론을, 토의는 대내적으로 이루어지는 협의적(協議的) 토론을 의미한다. 우리의 학교토론교육은 주로 논쟁적 찬반토론이다 보니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바쁘다. 토론자나 청중이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고, 다양한 사실과 정황을 보고 판단해서 이해하는 열린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이 토론이다.

결론을 내려야만 생산성 있는 토론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결론에 이르지 않더라도 토론을 통해 의견의 차이를 제대로 드러내준다면, 즉 의견의 불일치 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면, 또 토론을 지켜본 제3자가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이 잘 된 토론이다.

나아가 진정한 토론은 문답에 있다. 그 모범은 공자와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달리 저서는 없지만 질문을 잘했고, 공자는 맹자와 달리 강의를 못해도 대답을 잘했다. 이것이 문답형 토론(Socratic elenchus)이다. 질문과 대답을 잘하는 것, 그것이 토론을 잘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묻고 답하면서 배운다. 여기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배양된다.

우리는 토론을 통하여 주고받는 상생의 합의를 도출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합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의 의사결정방식이다. 그런데 한국의 토론문화의 문제점은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비민주적인 태도와 후진적인 토론문화이다.

토론에서 일방적 주장의 강요나 승패를 결정하려는 논쟁은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최근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로 사회가 온통 시끄럽다. 토론의 정신은 사라지고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참담한 모습만 보인다.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 심히 걱정이된다.

글쓴이 / 이택호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사)평화통일국민포럼 이사/홍보위원장

·(사)한국청소년육성회(일산지구회) 회장

·철학문화연구소 계간『철학과 현실』 자문위원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성숙의 불씨' 집필위원   

※ 글 내용은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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