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적 키워드이다. 창조경제란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함은 물론 새로운 일자리와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경제라고 알려지고 있다. 아무래도 창조경제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창의성 혹은 창의력이 관건인 것만은 틀림없다.
창의력은 상상력의 종속변수이다. ‘상상력’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의 경험으로 얻어진 심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나 이미지 활동, 즉 어떤 것을 마음속에 그리는 능력”을 말한다. 보통 외부 자극에 의하지 않고 기억된 생각이나 새로운 심상을 떠올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은 말 그대로 상상하는 능력일 뿐이다. 그런데 창의력은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생각해내는 능력이다. 창의력은 상상하는 능력을 통해 개발될 수 있다.
상상력은 사고의 독창성, 차별성, 기발함을 지닌다. 고정관념, 선입관, 편벽된 생각은 상상력의 적이다. 상상이 쓸데없는 망상처럼 보인다. 실현 불가능한 망상일지라도 꿈을 꾸고 노래하다 보면 실현되는 수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나,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공장 자산은 인간의 상상력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남과 달리 엉뚱하게 생각하는 것이 존중되고 용납되는 풍토에서 자란다. 서로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상대적 가치와 차별성이 서로 공존하는 상태가 자유이다. 자유로운 생각이 상상이다. 상상은 꿈을 꾸는 것이다. 생각의 나래를 펴고 무지개를 찾아다니다 보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다. 결국 꿈을 실현하는 수가 생긴다. 상상이 꿈을 꾸는 것이라면 창조는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조적 아이디어는 탐구정신과 도전정신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다. 아인슈타인도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빨리 배운다.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깊게 배운다.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쉽게 적응한다.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라는 발상의 전환이 창조의 밑거름이 된다. 이처럼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 창조는 싹튼다. 실패와 실수에 대한 관용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긴 고뇌와 상상의 날개에서 나온다. 시행착오의 탐구정신과 도전정신 그리고 실패나 실수에 대한 관용의 정신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엉뚱한 질문, 남과 다른 행동이나 태도를 지닌 아이들에게 ‘문제아’라든가 ‘말썽꾸러기’라는 딱지를 붙이지 말자. 엄친아 ‘모범생’과 엉뚱한 ‘모험생’이 다 함께존중받는 교육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밑거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