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시

말과 사람의 됨됨이

일산테스 2012. 11. 27. 12:23

성숙의 불씨
 304호 2012. 11. 27
‘성숙의 불씨’는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에서
주 1회(화)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말과 사람의 됨됨이

 

입의 위력은 그 기능이나 영향력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입에서 내보내는 바람이 신통력을 갖는다. “호~~”하고 부는 바람은 뜨거운 것에 덴 아기의 손을 시원하게 해준다. “하~~”하고 내보내는 바람은 온기를 뿜어내어 아기의 차가운 손을 녹여준다. “훅~!”하고 불면 촛불이 꺼지고 “후~~”하고 불면 불씨가 살아난다.

 

“박가와 박 서방의 차이”는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라든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의 의미를 잘 전해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봐, 박가야 고기 한 근 썰어다오.”라고 말한 사람에 준 고기 1근과 “여보시게 박 서방, 고기 한 근만 썰어주시게!”라 말한 사람에게 준 고기 1근의 양과 질은 엄청나게 달랐다는 이야기이다.

 

명절 귀향길에서 교통체증을 경험해본 사람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기억할 것이다. 거북이걸음과 같은 주행속도에 짜증이 난 남편이 방양을 바꾸어 시골길로 접어들었는데, 상황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가운데, “그냥 큰 길로 갈 걸 그랬나?”하고 푸념을 하는데, 부인이 핵폭탄 발언을 한다. “당신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불난 집에 기름 부은 셈이다.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이혼과 가정해체라는 비극으로 결말이 났다고 한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우리네 조상들은 구설수(口舌數)를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모든 갈등과 불행은 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당(唐) 말기부터 다섯 왕조를 거치며 8성을 지닌 11명의 임금(五朝八性十一君)을 섬긴 처세의 달인 풍도(馮道)는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간직하면(閉口深藏舌)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安身處處牢).’는 체세훈을 남겼다. 20년이나 재상으로 일한 그의 장수비법은 말조심에 있었던 것이다.

 

‘칼에는 두 개의 날이 있지만, 사람의 입에는 백 개의 날이 있다.’는 베트남 속담과 ‘당신의 입 속에 들어있는 한, 말은 당신의 노예이지만, 입 밖에 나오게 되면 그 말은 당신의 주인이 된다.’는 탈무드의 충고는 말로서 말이 많은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이다.

 

말은 단순히 사전적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를 반영한다. 입을 통해 나오는 부정적인 말은 통상 4종류로 압축될 수 있다. 진실보다는 거짓을 담은 망어(妄語), 부당한 이득이나 대가를 바라는 아부 아첨의 말(綺語), 갈등과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이간질의 양어(兩語), 그리고 욕설과 험담, 비방 등의 오어(惡語)가 있다. 인간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입의 배설물인 셈이다. 그 배설물에서 냄새가 난다. 인간의 됨됨이를 보고 느낄 수 있다.

 

이제 22일이 지나면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질 18대 대통령이 선출된다. 대선정국에서 오가는 말을 듣고 후보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정책이나 인물 검증보다는 인신공격과 상대방 허물을 들추기에 정신이 없는 각 후보의 진영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청치평론의 논객들을 보면서 그들의 인격적 됨됨이의 실상을 본다.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이들을 맹종하는 젊은이들의 인터넷 댓글을 보면 실종된 인성교육의 현 주소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성숙한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 모습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격과 품위에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 정치도 중요하지만 언사(言事)가 더 중요한 정치문화의 쇄신을 기대해본다.

 

 

 글쓴이 / 이택호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사)평화통일국민포럼 이사/홍보위원장

 ·철학문화연구소 계간『철학과 현실』편집위원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성숙의 불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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