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자의 오류(誤謬)
입장을 바꾸어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는 도덕성이 있는 태도로 간주되어 왔다. 서양의 황금률이나 동양의 ‘추기급인’(推己及人)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 행위를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황금률의 동양적 표현은 “己所不慾 勿施於人”이다. 성경에서는 긍정문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가르침이다. 모두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상대가 나와 같이 이성적인 존재이거나 합리주의자이어야만 황금률은 성립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만을 고집하는 사람에게 황금률을 적용하는 것은 ‘순진한 바보의 망상’일 뿐이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사람인데, ‘설마’하는 기대는 합리주의자가 범하기 쉬운 오류이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고 나서 후회를 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에서 합리주의자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한반도 시대’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그 발상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상대가 북한 정권이다. 그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대화와 협상의 창구를 열어 논다고 한다. 북한 정권의 실체를 알고 하는 소리인가?
김정은의 중대결심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곧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다. 핵은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실체를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이 분단이후 줄기차게 추구해온 대남 적화 전략전술을 잘 알아야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적화통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한반도가 적화 통일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평화의 걸림돌이 무엇인가? 김일성의 ‘비밀교시’ 중의 하나로 알려진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내용을 보면 주한 미군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교시를 내렸고 아직까지 유훈통치의 핵심지침으로 살아 있다.
“결국 조국통일의 관건은 미국 놈들을 몰아내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 놈들이 월남에서 손을 뗀 것처럼 남조선에서 물러나게 하자면 미국 놈들이 골치가 아프도록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야수적 만행과 각종 비인간적 범죄사실을 낱낱이 폭로하고 국제적으로 여론화하는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반미운동을 일으키고 미국 국민들이 반전운동을 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반미 반전운동은 교묘한 용어혼란전술로 이루어진다. ‘자주국방, 작전권 환수, 우리민족끼리, 평화적으로, 자주적으로’ 등등의 용어를 우리 국민들이 주장하도록 선전 선동한다. 이러한 전술로 성공한 좋은 사례가 베트남의 공산화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술전략을 공개적으로 전개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국가 보안법이다. 그래서 북한당국자들과의 모든 협상과 대화의 기본전제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 보안법 철폐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북한당국자나 이 땅의 종북 세력들은 ‘냉전논리’나 ‘색깔론’이라는 용어를 동원하여 딜레마의 뿔을 피하고 공격해 온다. 이 공격이 잘 먹히고 있다. 우리의 대북정책이나 한반도 통일정책에서 ‘순진한 바보의 망상’을 버려야 한다. ‘설마 그럴 리가, 그들도 같은 민족인데’ 라는 발상은 합리주의자가 범하기 쉬운 오류임을 알아야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