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자료

울돌목의 어제와 오늘

일산테스 2009. 6. 2. 07:35


1597년 2월 26일 윤두수, 윤근수 일파와 원균의 모함으로 宣祖가 이순신 장군을 파직하고 도성으로 잡아들인다. 사형직전에 하늘이 장군에게 제2의 白衣從軍의 기회를 주고(4월 1일), 판옥선 12척으로 330척의 왜선을 격파한 明亮海戰(울돌목 작전, 1597. 9. 16)의 기적적인 승리와 露粱海戰(노량 관음포 작전, 1598. 11. 19)에서의 완승 후 장렬한 戰死로 이순신 장군은 아래의 4가지 죄목의 누명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조선은 風前燈火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1. 欺罔朝廷 無君之罪(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
2. 縱賊不討 負國之罪(왜적을 놓아주고 토벌치 않아 나라를 저버린 죄)
3. 奪人之功 陷入於罪(남의 공로를 가로채고 죄에 빠뜨린 죄)
4. 無非縱恣 無忌憚之罪(방자하기가 끝이 없고 삼가 반성하지 않는 죄)


확실히 이순신 장군을 미워하는 세력들은 이순신 장군을 逆謀로 몰아 陵遲處斬할만한 논리를 전개했다. 그랬었다. 이순신 장군은 백성과 부하를 희생하고 패할 전쟁은 반드시 피했다.(制勝不敗戰略). 비록 왕명이지만 따르지 않았다. 丁酉再亂(1597년 1월) 당시 조정은 한산도 조선수군을 부산포로 진격하여 재침하는 왜군을 바다에서 맞서 싸우라고 했다. 이중간첩 要時羅의 말만 듣고 조정은 현지사정이나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나 리더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기가 찬 것은 이순신을 제거하고 한강 
이남의 영토를 확보하고자 한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전략에 조정이 말려든 것이었다.

두 번째 죄목은 원균의 장계에 근거한 것, 왜군의 전투형태는 치고 빠지는 Hit & Run 작전으로 조선수군을 큰 바다로 유인하여 빨리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 후 수적 우세를 이용 일거에 격멸하는 작전인데, 이순신 장군은 결코 속지 않았다. 큰소리치며 공격을 주장하던 원균의 입장에서 볼 때 이순신은 이적행위를 하는 우유부단한 장수로만 보였다.


돼지에겐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는 것처럼... 후일 원균은 칠천량(진해 앞 바다) 해전에서  전멸 당하고 육지로 도주하여 왜군의 칼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순간 이순신의 위대함을 알았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사랑이 지극했었다. 공로를 부하에게 돌리고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이었다. 당신 조선의 법도로는 상놈인 수군에게는 포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반상의 구별 없이 부하들의 공로를 상세히 적어 조정에 보고했으나 權臣들의 자제들이 그 공로를 가로챘다. 그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은 거꾸로 죄를 뒤집어썼다.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은 청렴결백했었다. 그리고 도덕적 용기로 온갖 부조리와 싸웠다. 아부와 아첨, 뇌물로 승차하던 당시의 관행과 일체 타협하지 않고 오직 바른 말만 했다. 그래서 그는 眼下無人의 방자하고 버릇없는 장군이었다. 소인배, 奸臣輩들의 비위를 거슬려 결국 네 번째 죄목을 받아야 했고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파도는 영웅의 한을 풀지 못하고 부질없이 역사에만 큰 공로 적혔네 오늘에 참 대장부

몇몇이더뇨...슬프다 충의의 이(순신) 장군이여!"

"열두 척 남은 배를 거두어 거느리고 벽파진 찾아들어 바닷목을 지키실 제 그 심정 아는

없어 눈물 혼자 지우시다. 삼백 척 적의 배들 산같이 깔렸더니 울도목 센 물결에 거품같이

다 꺼지고 북소리 울리는 속에 저님 혼자 우뚝 서 계시다. 거룩한 님의 은공이 어디다 비기

오리. 피 흘린 의사 혼백 어느 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벽파진 전첩비에서(노산 이은상 1956. 11. 19. )
배경음악: I'll Miss You(Tornero)/Amanda Lear

선조와 이순신의 갈등관계 클릭!
● 새로 발견된 난중일기 32일치 중 1595년 을미 11월 1일자

 

조정에서 보낸 편지와 원흉(元兇·경상우수사 원균을 매우 낮춰 표현한 것)이 보낸 답장이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만하는 말들이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 원균(元均)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


 朝報及元兇緘答則極爲兇譎口不可道. 欺罔之辭有難形狀.天地間無有如此元之兇妄.

(이순신·원균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았음 기존 ‘난중일기’에서도 드러나지만, 이처럼 커다란 혐오감을 보인 대목은 없었다. - 조선일보. 2008.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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